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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산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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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심령이 가난한 자(2021/08/08)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세계산돌교회 댓글 0건 조회 78회 작성일 23-03-2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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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입니다. 세상의 기준에 따르자면 그는 당연히 행복했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는 고귀한 신분이었습니다. 그는 메시아가 오실 다윗 왕조의 후손입니다. 역사상 가장 훌륭하고 고귀한 혈통을 지녔습니다. 그의 궁전은 아름다웠으며,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부가 얼마나 엄청나고 그의 보물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의 은이 길가의 돌멩이처럼 흔했다고 말합니다. 멋진 음식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수천 필의 말이 가득한 멋진 마구간이 그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궁전, , 포도원, 낚시터, 정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가졌으며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는 한없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에 대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헛되다는 말은 텅 비었다.공허하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공허했습니다. 참 행복을 찾지 못했습니다그런 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온전한 행복의 길을 알려 주십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51~12절에서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고 복이 있을 수 있는 원리들을 제시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51~12절에서 복은 헬라어로 마카리오스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마카리오스는 모든 바람이 성취된 내적 기쁨을 말합니다. 진정한 내적 기쁨이 있다는 의미에서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51~5절까지 복이 있나니 라는 말을 행복하나니로 바꾸어 다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살아라.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의 팔복은 우리들이 기대하는 행복과 다릅니다세상에서의 행복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움켜쥐는 것입니다. 부자는 행복하며, 귀족은 행복하며, 유명한 사람은 행복하며, 인기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하시는 팔복은 다릅니다. 팔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박해를 받는 자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메시지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라.’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그리스도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것, 즉 영적 가난을 말씀하십니다.

가난하다는 뜻은 헬라어 명사 프토카스에서 파생되었습니다. ‘프토카스는 자신의 신분을 알리는 것조차 몹시 부끄러워하는 가난한 자를 말합니다. 이것은 보통 가난이 아니라 구걸할 정도의 가난을 뜻합니다. 즉 인간은 완전히 무능력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궁핍하고, 움츠리며, 굽실거리는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심령이 궁핍한 자는 복이 있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울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영적 가난한 자들, 영적으로 공허한 자들, 영적 파산자들은 복이 있다. 이들은 행복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이들만이 진짜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난 속에서 머리를 숙이며, 하나님만을 깊이 의지하고 순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바로 이들의 것입니다베드로에게서도 본래 적극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하며,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5:8)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인의 괴수이며, 참람한 자였으며, 박해자였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연약함 가운데서 성령의 힘으로 완전해졌습니다세상은 자기를 주장하라. 자기를 자랑하라. 좋은 자리를 차지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네가 아무 것도 아님을 인정할 때,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시작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하나님의 그 기준은 너무나 높기 때문에 스스로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은 할 수 없다고 인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는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임하다고 말씀하십니다심령이 가난해지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에 들어 갈 것이며, 지금부터 영원까지 그의 모든 은혜와 자비하심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그는 우리 마음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이것이 심령이 가난한 것의 결과입니다. 행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두 번째, 메시지는 애통하는 자가 되어라.’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행복하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다 이것은 죽은 자에 대한 애도를 나타내는 데에만 사용됩니다. 애통하다는 것은 죄로 인해 죽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보고 슬퍼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들을 회개로 인도하십니다. 오직 애통하는 자들만이 용서를 받는 행복을 얻게 됩니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자유와 기쁨 그리고 행복을 얻게 됩니다그리고 용서 받는 자들,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계속 자백하는 특징이 있습니다로마서 7:15~20절에서 바울은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고 말하며, 매일 죄와 싸웠습니다. 마르틴 루터와 다윗도 자신의 죄와 싸웠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다른 사람들의 죄를 애통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애통하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게 되는 것과 애통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모든 이의 삶에서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죄악을 몸서리치도록 깨닫고 회개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께 나올 수 없습니다. 그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불의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이를 수 없는 우리의 무능력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력감과 절망감을 가지고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럼 심령이 가난하며 애통하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 성경책을 읽으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 보십시오. 그 속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보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응시하고 그와 그의 말씀을 묵상할 때, 여러분은 자신이 죄인이며, 자신의 무능력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즉 자신을 잃게 될 것이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기도로 구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죄를 고백하는 통회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깨닫고, 죄로부터 회개의 역사가 삶속에서 늘 일어나야 합니다. 구하십시오.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한 천국을 얻을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용서의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또한 천국의 백성이 되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그리고 우리는 죄에 민감해야 하며,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세상의 죄에 대해서도 함께 애통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마음이 찢어질 때 우리도 찢어지는 애통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세 번째, 메시지는 온유한 자가 되어라.’입니다.

그럼 심령이 가난하며 애통하는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의식을 잃습니다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면서 그에 대한 경이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자신의 처지에 대해 결코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와 동시에 원망 대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것입니다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탁월함과 여러분의 연약함만을 보게 될 것입니다그리고 기도에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될 것입니다여러분이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대로 그분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은혜를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또한 죄에 대해 민감하며, 우리의 죄와 주변의 죄를 슬퍼하며 애통하게 될 것입니다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용서를 깨닫게 되고 깨끗케 된 삶에서 오는 참된 평안, 행복,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즉 온유한 자가 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은 죄에 대한 바른 태도입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문제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큰 슬픔을 느끼며, 애통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를 애통해하는 우리에게 하늘의 위로를 풍성히 내려 주시며,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를 받으므로 행복해 질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지속적인 평안의 행복이 찾아 올 것입니다또한 신앙이 성장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낮아짐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처럼 온화하고, 다정하며, 인내심이 많고, 하나님께 순종적인 사람 즉 온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온유한 자에게는 새롭게 되는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주실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도 그리스도께 속한 땅을 누리고 심지어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바클레이는 이렇게 말합니다세상은 세상의 기쁨을 얻을 수 있고 그 기쁨을 그만큼 쉽게 잃어버릴 수도 있다. 재산의 격감, 건강 악화, 계획 실패, 야망이 가져다준 실망, 심지어 날씨 변화까지도 세상이 줄 수 있는 변덕스러운 기쁨을 우리에게서 앗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그의 앞에서 행하는 데서 오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잔잔한 기쁨이 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온유한 산돌교회 성도 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