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전체검색 닫기
  • 회원가입
  • 로그인

세계산돌교회

모바일메뉴 열기

설교말씀

소금과 빛(2024/01/07)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세계산돌교회 댓글 0건 조회 62회 작성일 24-01-20 19:53

본문

2ed4f31cfb38698e895b6e967869598f_1705747941_8978.jpg
 


하나님 말씀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고대 이스라엘에서 소금은 사해 남서부 지역에 있는 소금 늪지에서 재취하였습니다. 바다와 그 주변에서 취한 소금은 질이 떨어지기 쉬웠습니다. 그리고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쓰레기로 취급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가옥의 옥상에 뿌려졌습니다. 옥상 지붕의 흙을 딱딱하게 굳게 하고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지붕은 평평하여 사람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었으며, 지금도 아이들의 놀이 장소나 단체 회집 장소로 사용됩니다. 이처럼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지붕에 뿌려져 많은 사람들의 발에 밟힙니다.

 

또한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흙으로 만든 작은 접시에 기름을 담고 심지에 불을 붙인 등불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실내에서 등잔을 벽에 돌출된 등경 위에 두어 온 방안을 밝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잠깐 자리를 비울 경우에는 등잔을 등경에서 내려 말로 덮어 두었습니다. 말은 흙으로 만들어진 용기이며, 9L 곡식의 양을 측량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 당시에는 불을 쉽게 붙일 수 있는 성냥이 없었으며, 뱀 등의 동물들이 등잔을 잘못 건들려 화재가 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등잔을 등경에서 내려 말로 덮어 놓았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등잔을 말로써 덮어 빛을 차단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말씀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라.”입니다.

 

소금은 우리 삶에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첫 번째, 소금은 생명을 유지합니다. 사람의 혈액 속에는 0.9%의 염분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소금 섭취가 부족하면 소화액 분비가 감소하여 소화 불량이 됩니다. 그리고 땀을 많이 흘려 갑자기 염분을 너무 많이 상실하면 현기증, 의식혼탁, 몸의 힘이 쑥 빠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은 이온음료를 자주 마십니다. 이 음료수의 주 성분은 소금입니다.

 

그리고 금식 기도하는 사람들도 자주 소금물을 먹어 몸에 소금기가 고갈되는 것을 예방합니다. 즉 생명은 소금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처럼 진실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소금처럼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반면 소금이 없는 세상처럼 진실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없는 세상은 영적으로 생명이 끊어진 세상입니다.

 

두 번째, 소금은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생선과 고기를 보존하는데 사용됩니다. 마찬가지로 소금인 그리스도의 제자가 없는 세상은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세상이 부패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소금은 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다만 녹아 맛을 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의 삶도 항상 겸손히 자신을 숨기고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만을 드러내야 합니다.

 

네 번째, 소금은 치료제입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치통을 소금으로 고쳤습니다. 그리고 신생아도 소금으로 문질러 그 몸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소금의 삶을 사는 성도는 이 세상의 아픈 부분을 치료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소금은 순결한 희생을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에 방부제의 역할과 더불어 제물을 정결케 하는 소금을 뿌렸습니다. 이처럼 성도 역시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 위에 뿌려지고 타서 없어지는 소금처럼 순결한 희생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13절을 봉독하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는 헬라어로 땅의 소금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의 의미는 헬라어로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리고 무미건조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즉 제자들이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어리석은 삶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는 염분이 사라져 버린 소금은 전혀 그 가치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니라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항상 밟히게 됨을 의미합니다.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항상 사람으로부터 밟힐 정도로 무가치하고 비참해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세상 속에서 구별되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짠 맛을 유지할 책임이 있습니다. 세상과 함께하지만 세상과 구별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지나치게 세상과 같아진다면, 우리는 쓸모가 없어집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세상 속에서 소금이 될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511~12절을 봉독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던 시대에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불길한 자들로 취급하며 무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세상의 빛이며 소금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불결한 자들을 무시하고 그들과 격리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교류하며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욕과 핍박을 당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세상의 소금이 되어 많은 이방인들을 구원하였습니다. 즉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할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보호받고 쾌락을 누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박해받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처럼 우리는 직장 동료들, 가족들, 성도들 등 모든 상황 속에서 짠 맛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도 소금을 치면서 숙련되게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며, 세상이 부패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만을 전달하며, 이 세상의 아픈 부분들을 치료해야 합니다. 순결한 희생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두 번째 말씀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라.”입니다.

(마태복음 514~15절을 봉독하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에서 세상은 헬라어 코스모스입니다. 이 단어는 우주를 의미합니다. 즉 이 땅의 빛이 아니라 우주의 빛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은 우주 공간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는 태양이나 별처럼 온 세상의 어두움을 밝힌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산 위에 있는 동네가의 의미는 성도들의 삶은 숨겨진 삶이 아니라 밝히 드러나는 삶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삶임을 의미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도시는 고지대에 건설되었습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어두운 밤이 되면 불을 켜서 주위 사람들의 눈에 잘 띄었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빛 된 삶은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밝히 드러나는 삶이며, 모범이 되는 삶이라는 것을 의미입니다.

 

그리고 숨기지 못할 것이요할 것이요는 헬라어 뒤나타이로 다이나마이트의 폭발력이 강한 폭약처럼 권세와 능력과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는 자신을 숨기려 해도 드러나는 삶을 살수 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어둠 가운데 빛처럼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나타냅니다.

 

빛이 등경 위에서 비추는 것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모든 사람 앞에서 비치게 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합당한 선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봅니다. 그들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심지어 박해하는 사람들조차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람들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착한 행실을 행합니다. 오직 자신이 출세하기 위해, 자신이 모든 영광을 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며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는 없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할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을 돌릴지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시작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착한 행실을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선교사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소금의 맛과 엄청나게 매력적인 기쁨과 사랑의 빛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삶속에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기도와 선한 행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2024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어느 곳에서 무엇으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지? 기도해 봅시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세상 속에서 우주와 같은 빛과 생명의 소금이 되는 선교사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하며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