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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산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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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나사로의 부활(2023/06/25)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세계산돌교회 댓글 0건 조회 76회 작성일 23-07-0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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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말씀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요한복음 11장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두 자매는 자신의 병든 오빠로 인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오빠의 모든 병이 고쳐 질 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녀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사람을 통하여 소식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빨리 오셔서 치료해 주십시오.”라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람을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즉 예수 그리스도께 소식을 전하기도 전에 나사로는 병들어서 죽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기다렸던 나사로는 죽었으며, 가족들은 망연자실해 있었습니다.

 

병든 나사로는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을까요? 아픔과 고통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찾았을까요? 가족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나사로의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나사로의 이름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사로를 도우시러 오십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에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때 즉 나사로가 죽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게 하기 위해 나사로의 무덤으로 직접 찾아가십니다.

 

당시 무덤들은 보통 석회암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이었습니다. 무덤은 흔히 사람이 안을 걸어 다니기에 충분할 정도로 컸습니다. 여러 시신들이 한 무덤에 안치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장사된 후에는 커다란 돌을 굴려 무덤 입구를 가로막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나사로의 무덤으로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외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나사로가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말씀은 영생의 축복에 감사해라.”입니다.

(요한복음 1111~14절을 봉독하겠습니다.)

죽음은 매우 현실적이며 최종적인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로의 죽음을 나사로가 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나사로가 죽었으나, 영원한 죽음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잠자는 것에 불과하며 죽음 이후 영원히 영생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살릴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나사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죽었지만 영원히 살 것이었습니다.

 

또한 마르다 역시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나사로가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 것이며, 자기와 마리아도 죽었을 때 그러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미 죽은 모든 성도들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아서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지만, 영원히 죽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적 죽음을 막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부활 그리고 그분과 더불어 영원히 거하는 풍성한 생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시며 생명이십니다.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우리는 부활과 생명과 영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참된 복된 소식입니다. 죽음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며, 죽음으로 이별한 가족들을 천국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의 삶에 죽음이라는 단어는 사라집니다. 자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영생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죽음의 두려움과 영원한 이별이 아닌 아름다운 천국으로 초대해 주심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감사와 찬양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많은 분들은 100세 인생이니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100세 인생은 너무도 짧은 인생입니다. 100세 이후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영생을 준비하시는 성도 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두 번째 말씀은 솔직한 감정과 믿음의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께 도움을 요청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먼저 경험하신 분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켜야 하는 고통, 세상의 거짓으로 인한 아픔, 십자가 고통과 죽음, 가난과 병듦으로 인한 동정심, 죄로 인한 분노, 슬픔, 심지어 무시와 좌절과 버림 받음까지 많은 감정들을 느끼셨습니다. 이 모든 감정들은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많은 감정과 경험을 하신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감정들을 잘 이해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정도로 우리를 최고로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마리아와 마르다를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오시지 못한 것에 많은 불평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불신으로 믿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아와 마리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요한복음 1121~27절을 봉독하겠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이것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하소연이자 간구였습니다. 그녀들은 고통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139~43절을 봉독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리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을 옮기라고 요청하셨을 때, 마르다는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하고 말하면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돌을 옮기라고 또 명령하십니다. 마르다는 그 명령에 믿음으로 응답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십니다. 죽은 나사로는 살아납니다. 슬픔의 장례식은 기쁨의 축제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불평과 불신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진실한 감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두렵습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나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아픕니다. 속상합니다. 슬픕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도와주세요!” 진실하고 솔직한 감정과 함께 믿음의 기도와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어떤 것도 숨기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솔직한 감정과 믿음의 기도로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로할 것이며, 도와주실 것입니다.

 

기도가 지연되는 듯 보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오실 것입니다. 그분의 도움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방법과 형태로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당신이 필요로 할 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께서는 당신에게 반드시 다가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사랑하여 십자가 죽음까지 희생하신 우리의 구원주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솔직한 감정과 믿음의 기도로 도움을 요청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세 번째 말씀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집중해라.”입니다.

(요한복음 1115절을 봉독하겠습니다.)

 

오늘 나사로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게 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믿음이 자라나게 하기 위한 사건입니다.

 

인간의 고통을 덜어 주는 기적, 즉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죄용서와 다른 치료 사건과는 달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사로 가정을 진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종종 함께 지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즉시 그들에게 가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고통을 아셨지만, 즉각 대응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따르는 순종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때에 도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이 된 날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따뜻한 기후에서는 시체가 빨리 부패했으므로, 시신은 흔히 사망 당일에 매장되었습니다. 그리고 나흘은 나사로가 이미 완전하게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이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의 지연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거나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항상 정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정확한 일정과 목적에 따라 모든 필요를 채우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인도하시는 때에도, 그리고 오늘 우리를 인도하시며, 기도에 응답하시는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종 우리가 기도할 때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되는 듯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의심과 낙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지연은 인내를 훈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신뢰함에 따라 우리의 인내심은 향상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설명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재난을 겪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후에 하나님의 때가 그분의 사랑임을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한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저버리셨다고 서둘러 추측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미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성도들이 직면하는 시련은 무엇이든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악한 상황에서도 선으로 이끌어 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통이 닥치면 투덜거리거나 불평하며 하나님을 탓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정신없이 혹은 두려워하며,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앞서 가려고 애쓰거나 서두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들을 지혜롭게 사용하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제일 먼저 예수 그리스도는 내게 어떤 일을 시키실까?” “나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 돌릴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 하고 하나님께 질문해야 합니다.

 

나사로는 부활했으며, 나사로의 죽음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나사로는 구브로 지금은 사이프로스 섬에서 목회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리고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행복과 불행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선한 길로 인도됩니다.

 

영생의 축복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솔직한 감정과 믿음의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고난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영생의 축복을 받은 세계 산돌교회 성도 분들 감사한 마음으로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고난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집중해 보십시오. 고통이 아닌 행복과 감사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질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