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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산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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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나무의 사랑

하나님의 뜻과 영적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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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계산돌교회 작성일 23-07-24 08:2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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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은 '주권적(법령적)'인 뜻과 '율법적(교훈적)인 뜻, 그리고 '성향적'인 뜻으로 나눌 수 있다.

주권적인 뜻은 예정, 소명, 심판 등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이루시는 신비로 우리는 그 뜻에 대하여 고백과 찬송 밖에 드릴 것이 없다.

율법적인 뜻은 계명처럼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르쳐 주시는 것으로 우리는 그 뜻에 무조건 순종하여야 한다.

성향적인 뜻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고 영광을 받고 싶어하는지를 보여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living sacrifice)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logos)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metamorphosis)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삶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 즉 영적 예배로부터 이루어진다. 우리가 이 거룩한 영적 예배를 성공적으로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 이것은 세상 나라에서 분리되는 체험을 가리킨다.

그 다음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한다. 이것은 영이 중생하고 성장함으로써 영의 기능인 지성과 감정과 의지까지 변화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과정에서 옛 자아(거짓 자아)의 역할을 부정하는 일, 즉 새 자아와 갈등을 일으키는 옛 자아를 처리하는 일을 반드시 겪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여기에서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믿음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옛 자아가 현재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속사적으로 이것을 십자가에 이미 못 박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것을 시인했을 때 우리의 옛 자아가 무너지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영혼이 성장하고 성숙해지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다. 영혼의 성장 과정에 있는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해야 한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죄악이고 죽은 행실이기 때문에(롬14:23, 히6:1, 히9:14) 자기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늘 묻고 응답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 후에는 무조건 주의 뜻으로 믿고 순종하여야 한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보다는 자기 힘과 의지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여전히 자기 자아만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많은 봉사와 선을 행하면서 그에 해당되는 기쁨을 누리며 산다. 그러나 결국에는 자신들의 행위에 피곤함을 느끼고 그들 자신의 의(義)를 내세우며 자랑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율법적 영성에 해당된다.

이와 반대로 '복음적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요19:30)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이 모든 것은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자아는 항상 죽어 있다. 주의 뜻에 순종하고자 할 때에도 그리스도 십자가의 능력만을 의지하며 성령의 도움에 호소한다. 성령만이 이 일을 하게 해주실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에게 은총의 삶을 직접 내려 주신다.


본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4:18).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롬4:20).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믿음의 조상이다.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22:18).


그러나 히브리서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믿음으로 드렸다고 명시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미 받은 자였으며, 그 약속의 신실함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11:18~19).


아브라함이 보여 준 이 믿음이야말로 바로 '복음적 영성'의 핵심이다.

성경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성취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은 행하는 것이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2:14).


즉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믿고 행하는 것이다. 믿음은 영성으로 다듬어져야 성숙한다. 믿음이 성숙하면 약속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산다. 그리고 어떤 고난과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의롭고 전능하시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나의 마음은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된다.

미래를 믿는 것은 소망이며, 믿음으로 나타난 행동은 사랑이다.